11월 22일,
현재, 00시 12분을 달리고 있다.
요즘 드레스덴의 외곽지역으로 자꾸 놀러를 가고 싶다. 그런데, 무서워서 가질 못하고 있다. 독일도 범죄가 끊이질 않고 있고, 유괴나 유학생을 상대로 범죄사건도 때때로 있었기 때문에, 밤에 어디론가 나간다는 것은 연주회가 아닌이상 용기가 나지 않는다. 물론, 친구를 만나러 가거나 하면 괜찮다. 큰 도시일수록 무서운 것 같다. 도르트문트에서는 새벽에도 다녀도 그닥 무섭지 않았는데, 내가 사는 동네는 뭔가 무섭다. 뭐 기분탓일 거라고 생각한다.
오늘 갑자기 드레스덴의 헬러라우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이 난다. 아까 유투브에서 영화 읽어주는 유투버의 영상을 보고 나서 외국 남자에 대한 판타지가 사라졌다가 다시 생겨버렸다. (물론, 내 마음은 시시각각 변하고, 까다로워서 갈피를 잡기 힘들다.)
나랑 그냥 제대로 안지내보다가, 그냥 가끔 만나는 사이라면 나를 재밌거나 푼수같은 사람으로 알수도 있고 아니면 진지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 아직은. 다만 매우 솔직하다는 점. 아티스트들은 항상 자기 자신에 대한 연구를 하기 마련이다. 나는 내 자신에 대해서 잘 안다고 생각했었는데, 결국 다시 또 제자리를 걸을때가 있다. 이런 밤에 생각들은 나를 또 다른 나로 인도를 하는 것 같다.
이야기의 시작!
드레스덴의 헬러라우라는 아주 멋진 동네가 있다. 도시의 외곽지역에 있고 공연장이다. 그냥 딱 처음 봤을때, 확실히 공산주의를 가장 심하게 겪은 동독이라 느낌이 싸했다. 그 건물에 대해서는 나중에 얘기를 하겠다. 그 건물에 대한 얘기가 아니니까 말이다. 나는 자주 그 공연장에 멋진 공연들을 보러 갔다. 헬러라우 공연장은 정말이지, 세계 최고의 아티스트와 팀들이 온다. 한국에서 엘지아트센터에서 할 만한 공연들을 여기서는 10유로도 안되게, 이 헬러라우라는 공연장에서 볼수 있으니 게다가 가까이서 아티스트와 얘기를 나눌수도 있다.
한번은, 내가 버스를 잘못 탔다. 독일 대부분이 그렇진 않지만, 드레스덴 헬러라우로 가는 버스는 가끔 어려워진다. 갑자기 공사가 있거나 운영방법이 자주 바뀌는데, 그래서 어쩔때는 1시간이나 걸릴때도 있고 어쩔때는 30분만에 갈때가 있고, 그전날에 모든 버스 노선 상황을 잘 파악해야 한다. 주말에는 운영 시간이 바뀌기 쉽다. 분명히 나는 알맞은 버스를 탔는데, 그 버스가 오늘따라 다른 길로 간다. 게다가 나는 어떤 역에서 내려야 하는지, 놓쳐버렸다. 버스에서 흘러나오는 음성을 그냥 흘러들었다. 무슨생각이었는지...
8시에 공연인데, 다시 7시 30분이었다. 물론 시간은 있지만, 티켓도 찾아야 하고 여기서 길을 잃으면 이제 나는 그 공연을 못본다는 생각에 갑자기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밤이라 너무 컴컴해서, 산 자락에 있는 것 같은 동네라 도무지 어디로 가야할지 몰랐다. 헬러라우라는 이곳은 거의 산동네와 같은 느낌이다. 큰 도로변에 샛길로 새면 동네가 나오는 듯한 그런 동네라, 길을 잘못 틀면 다른 방향으로 갈수가 있어서 너무 걱정이었다.
그러다가, 잘못된 길로 들어섰다.
그리고 한 남자가 큰 개를 끌고 산책 시키는 게 보였다. 나는 너무 급해서, 헬러라우는 어디로 가야하는지 물어봤다. 그랬더니, 너무 차근차근하게 여기서 반대로 가야하는데, 나를 따라오라면서 큰 개를 이끌고 나를 안내해줬다. 자기도 그 방향이라면서. 나는 개가 안보였다. 남자가 너무 잘생겼다는 생각보다. 이 상황에서도 아니, 뭐 저렇게 침착한 남자가 다있어. 아니, 나만 안 침착한건가. 공연을 놓칠까봐 조마조마했는데, 남자가 너무 느긋하게 날 인도하는 거다. 벌써 공연시간 20분전, 40분이 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함께 걸어가는데 별다른 얘기는 안했다. 그냥 그가 물어보는 질문에 대답을 하고, 헤어질 때 쯤에야 그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존잘이었다. +.+! 어두운 나머지, 희한하게 남자의 얼굴에 꽂혀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동물을 좋아하는 내가 개가 어떤종인지 아직까지 생각이 나질 않는다. 다만 그 사람의 얼굴도 지금은 잘 생각이 안나지만, 느낌은 좋았다는 것 뿐. 내가 눈이 높아진 이유도 그거다. 독일에서 자꾸 조각들을 보는데, 어떻게 눈이 안높아질수가 있단 말인가.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타인이 보기에 저 음악하는 남자 혹은 악기하는 남자가 아무리 잘생겼다 하더라도, 같은 동종업계라면 전혀 그 잘생김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냥 싫다. 어떤 이들은 뭐 조성진이 좋다 누가 좋다 하는데, 난 전혀 느낌이 없다. 그냥 여자보는 느낌. 어렸을 때부터 남녀공학에 자라나면서, 오빠들과 사촌오빠들과 자라면서 남자를 볼때 까다롭기도 하고, 뭔가 잡혀있어서 웬만한 사람은 남자로 안보인다. 그런데,
암튼,
그 남자가 나에게 그 공연 보러 가는 거야 라고 물어보고, (대체적으로 나는 너무 그런 독일남자들에게 차가운 것 같다. 질문을 받기만 하고 질문을 안한다. 모르겠다. 왜 안하는지. 궁금하지도 않지만, 뭐 ..모르겠다. )
밑에 총각이 예전에는 병원에 실려나갔을 때, 살아서 돌아오면 한국 음식을 대접해주고 싶다고 마음속으로 소리쳤지만 막상 살아돌아오니, 내가 그 이후에 그의 택배를 또 받아준 적이 있는데 그가 나에게 <나는 진짜 고맙게 생각해> 라고 말 하자 마자. <알았어. 안녕> 이라고 외치는 철벽녀라, 나도 모르겠다. 왜그러는지..
난 사실 부끄러우면 차가워진다. 오히려 남자처럼 생각을 안하면 진짜 친근해지고, 남자처럼 생각하면 차가워지는데, 독일에서는 모든 사람에게 차가운 것 같다. 그 차가움때문에 불친절하다는 소리를 듣고 있어서, 약간 억울하긴 하지만 알빠 아니다. 그건 오해이니 뭐.
우리집 밑에 총각은 친절한데, 그 친절에 내가 훅 갈까봐 철벽을 치는건지 모르겠고, 일단은 그냥 내가 철벽이지만 누군가 100번 찍으면 넘어갈 스타일이라, 그런 사람을 찾고있을 뿐인데. 독일에는 소심한 남자들뿐이라 그런남자는 거의 없다. 싫다하면,
아, 그래 오케이 끝. 이거다.
그 개를 끌고 나를 헬러라우 공연장이 있는 곳으로 데려다준 남자는 저쪽으로 가면된다고 얘기하고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독일에서는 가끔 항상 사람들이 친근하게 뭔가 잘 가르쳐주고 잘 얘기해준다. 그런점에서는 친근하다. 잘 도와주니까. 그런데 그 잘도와준다는게 한국스타일이랑 다르다. 뭐 거의 가까이 가준게 아니라 예를 들면 그곳으로 향하는 골목전까지 안내했다. 본인도 가야할 길이 있었으니, 게다가 거의 8시가 다되어가서.
덕분에, 그 독남덕분에 난 헬러라우 공연장에 딱 아슬아슬하게 58분에 도착해서, 공연을 볼 수 있었다. 진짜 헬러라우를 갈 때마다 마음을 꼭 붙들어메고 가야한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말이다. 루트를 다 짜고 말이다.
오늘따라 그때의 느낌이 되살아 난다. 헬러라우를 밤에 걷고 싶다. 만약, 지금 코로나로 다들 두려움이 큰 마당에 정말 인적이 드문 헬러라우에 밤에 걷고 있으면, 머리에 꽃을 꽂지 않아도 이상한 사람으로 몰릴수도 있고 경찰차가 와서 어디론가 또 다른 모험을 하게 만들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난 모험심이 강한 편인데, 안전한 모험을 하고 싶어한다. 준비되어 있지 않은 모험은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어서, 철두철미하게 모험을 준비해야 한다. 하지만, 배터리가 없어도 어디에 떨궈나도 집에 잘 돌아올 인물인 건 확실하다. (유경험자)
밤에 돌아다니고 싶은 안전한 모험심을 즐기는 21세기 문방구의 잡담은 여기까지.
모두 잘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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