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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c 문방구가 보는 예술과 이야기들/21c 클래식 음악

[현대음악 클래식] 우연성 음악 혹은 Indeterminacy (1)

by 21세기 문방구 뽑기다운타운언니 2021. 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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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문방구■

※ 이미 존케이지에 대한 얘기는 많은 블로그에서 찾을수가 있다. 그외에 다른 이야깃 거리와 함께 언급을 할 것이다.

이 개념을 가장 쉽게 설명하고자 한다면, 개념 미술의 창시자 뒤샹의 작품을 언급하면 오히려 그 부분이 더 쉽게 다가올 수도 있을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계속 언급을 하게된다. 그리고 미술사조와 음악사조의 시대적 동시성이 존재하기에, 예를들자면 구조주의, 점묘주의, 다다이즘, 미래주의 등등 이 사조들이 모두 미술에서 먼저 출발하였고, 음악이 이후에 영향을 받은 사실은 증명되었던 일이다. 그렇기에, 20세기의 음악을 얘기하려면 늘 다다이즘과 같은 미술사조와 연관되어 있음을, 우연성음악과 같은 개념을 언급할 수 밖에 없다. 음악에도 이런 개념적인 것을 가져오면 어떻게 될까 하는 물음에서, 우연성 음악은 자연스러운 현대 예술사조에서 건너야 했던 하나의 과정중에 하나가 아닐까 하고 생각이 든다. 

특히나, 우연성 음악의 작곡가로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존케이지(1912-199,로스앤젤레스)(균류학자, 즉, 버섯학자 로도 알려져 있음) 그의 작품 4분 33초(1952-53)가 이젠  대중적인 정보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피아노 뚜껑만 열고 닫고 하면서, 4분 33초동안 피아니스트가 아무것도 하지 않은채 사람들의 반응과 소음들로 만들어내는 소리를 새로운 음악의 개념으로 끌어올린 존케이지의 이 퍼포먼스와도 같은 음악은 당시엔, 센세이션 했을테니까.(지금은 현대음악계에서 그런짓을 하다간, 야유를 맞을수 있다.  예전에 도나우에싱겐 음악제에서 어떤 영국작곡가가 뉴스 오프닝 곡 처럼 곡을 써서, 사람들이 현대음악장에서 어떻게 이런 음악(조성음악)을 내보낼 수 있냐고 야유를 퍼부으며, 독일인들이 하나같이 안좋은 반응들을 연주동안 소리지르면서.... 그리고 연주후에 직접적으로 나타내는 걸 본 적이 있다. 꽤 신선한 경험이었는데, 21세기에 조성음악을 쓰는 현대음악가는 현대음악가로 쳐주지도 않겠지만, 암튼 이전에 했던 짓을 복사붙여 넣기 한다면, 현대음악계에서는 발도 못 붙일 것이다.)  악보도 심지어, 한 페이지에 짤막하게 써진 글이 전부이다. 단지 그가 설정한 것은 4분 33초가 되면 끝이 난다는 것이다. 


↓이곳 링크를 들어가면 존케이지의 4분 33초 악보를 볼 수 있다. ↓

www.moma.org/collection/works/163616


그가 음악을 만들기 처음부터 이런 음악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처음엔 조성적이고 매우 서정적인 음악을 했던 사람이었고, 우리가 아는 우연성음악은 그의 작업 후반부에 이루어 낸 것이었다. 그것은 그가 동양사상에 심취하고 나서부터 생긴 개념이었다. 그는 주역에 관심이 많았다고 알려져있다. 주역에 영향을 받아, 음악의 길이만으로 창작을 한 것이 바로, 우연성 음악의 대표적 작품 <4분 33초>이다. 이 작품의 초연은 피아니스트 데이빗 튜더가 연주를 한다. 

침묵을 연주하는 것, 그리고 침묵이 오히려 (청중으로 인해) 우연히 사운드를 발생시킨다는 것등의 다양한 관점에서 이 작품을 바라볼 수가 있는 것이다. 존 케이지 작품에 대해 언급하게 될 때, 늘 따라다니는 인물, 피아니스트 데이빗 튜더 (David Tudor)가 있다. 

John Cage - 4´33´´by David Tudor

청중이 연주자나 작곡자가 될 수 있는, 그런 기회의 음악, 그리고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질 수 있는 실험적 음악이었던 동시에 새로운 개념의 음악이었던 것이다. 

존케이지 하면 떠오르는 인물들,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 백남준, 데이빗 튜더, 다케미츠,얼 브라운, 불레즈, 오노요코, 쇤베르크, 헨리 카웰...etc.

그리고, 아방가르드라는 사조.

우연성 음악(Chance music or Aleatoric music) 혹은 indeterminacy은 정말 말 그대로, 계획되지 않은 (그러나 계획된) 음악이라는 것이다. 의도는 그랬다.  존 케이지의 워터뮤직(그러니까, Water walk) 을 들어보면, 그냥 사람의 움직임이나 행위가 곧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시발점이 되고, 준비된 재료 (혹은 우연히 발생된 재료는 없다는 것) 즉, 악기라고 칭할 수 없는 존재에 의미를 부여해 케이지가 직접 사운드를 도출하고 만들어내는 장면들을 보면서 관객들의 웃음소리만 유발하는 그의 퍼포먼스가 뭔가 해프닝과 같아서, 해프닝이라는 용어도 줄곧 사용되곤 한다. 

이 우연성 음악에 대한 것이 음악의 개념을 확장시키는 실험적인 부분을 차지했지만, 오래가지 못했던 까닭은 바로, 우연성 음악이 진짜 우연성에 의한 음악이 아니라는 것이 입증되면서, 결론적으로 우연성도 계획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도출되면서 끊임없이 논란에 서있기도 하다. 이런 불확정성 음악의 단계가 현재까지 계속해서 진화해서 발전중이다.  그만큼 존케이지의 이런 작품들이 아직까지도 많은 작곡가들에게 영향을 주면서, 새로운 음악사조나 새로운 노테이션(기보법), 악보 그리고 음악에 접근하는 다양한 방법들이 퍼포먼스적인 측면에서 많이 발전된 형태로 현대에도 이런 움직임들이 계속되고 있다. 1950년대에서 60년대 미국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이런 아방가르드적인 움직임 그리고 그 이후에 1954년 독일의 세계적인 현대음악 축제인, <도나우에싱겐 음악제> 에서 케이지의 음악과 사상이 소개되어 알려지게 되고, 독일에서 당시에 활동중이던 독일의 천재 작곡가 칼하인츠 슈톡하우젠이나 피에르 불레즈와 같은 거장들에게도 충격을 안겨다 주었다. 우연성의 음악은, 이후의 미국 작곡가 얼브라운과 시대성을 같이 하여 이후엔  좀 더 확장되어 독일에서나 미국에서 현재 뮤직테아터에서도 존 케이지의 잔류가 느껴질 정도의 작품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John Cage

"

Water walk

"

 

우연성이라는 것이 과연 정말 우연에서 발생되는 것인지에 대한 물음부터, 예를 들어, 교통사고나 어떤 알수없는 사건사고가 우연적으로 발생한다고 해도 원인과 결과가 있듯이, 사운드는 부딪혀야 그리고 처음과 끝을 예견해야 진행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관점으로, 이것이 진짜 음악이라고 할수 있느냐 라는 점에서다. 이것은 21세기에 와서도 끊임없이 창작가들에게 논란의 요소가 되고 있다. 하지만, 정답은 없다. 하지만, 이 우연성 음악이라는 것 자체가 논란이 있기 이전에, 오래가지 못한 것은 논리적으로 오류를 범했기때문에, 20세기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논리성에 부합되지 못하다보니 그 시대에서 사그라들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이런 개념음악과도 같은 논란의 요소가 있는 우연성의 음악은, <누구나 다 예술가가 될 수 있다> 라고 말한 요셉보이스와 같은 플럭서스 운동을 한 아티스트의 연장선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존케이지가 플럭서스 운동가는 아니였지만, 그 운동가들과 협업하고 그 당시 활동을 했었고 영향을 받고 영향을 준 아티스트라는 점은 음악사에서 증명된 사실이다.  아마도 저런 말은 예술에 대한 어쩌면 모독과 같이 느껴질 수도 있고, 혹은 반대로는 음악가나 퍼포먼스의 확장과도 같은 새로운 발상이 아니었을까 한다. 이 우연성이 지니는 예술이, 대체적으로 재생산되었을 때, 그러니까 또 한번 다른 어떤 장소에서 행해질 때 똑같이 반복될 수 있을까 라는 것에 대해서는 당연히 100퍼센트 똑같이 그려낼 수 없다는 것에 회의가 들기 시작한다. (기본적으로 음악은, 동일하게 연주되어야 한다. 해석의 부분이 아닌, 사운드가 똑같이 그려져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연성 음악은 장소나 연주자등에 영향을 받고, 청중이 달라지면 다른 반응이 오게되니...결론적으로 사운드와 도출의 결과가 계속 변화하기에 이것이 어떤 음악적 가치를 지니는 것에 의해서 회의를 가질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20세기 음악에서 논리와 이론이 주를 이뤘던 상황에서 굉장히 회의적인 입장이 될 수 밖에 없었고, 음악이 가지고 있는 고유성이 단순 일회성으로 전락해버리는 것에 있어서 비판이 생기기도 했다. 그래서 존케이지를 음악가로 좋아하는 사람도 아닌 사람들도 존재한다. 

<존 케이지의 4분 33초 악보>를 옮겨와보자면,


4 minutes 33 seconds 
John Cage 

I 
TACET 

II 
TACET 

III 
TACET 

NOTE: The title of this work is the total length in minutes and seconds of its performance. At Woodstock, N.Y., August 29, 1952, the title was 4'33" and the three parts were 33", 2'40", and 1'20". It was performed by David Tudor, pianist, who indicated the beginnings of parts by closing, the endings by opening, the keyboard lid. However, the work may be performed by (any) instrumentalist or combination of instrumentalists and last any length of time. 

FOR IRWIN KREMEN JOHN CAGE


정말 이렇게 써져있다. 음표가없는 악보이다. 

TACET 침묵이라는 뜻이다. 결론적으로 연주자는 침묵을 연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존 케이지가 4분 33초를 만들었을 때, 이미 그 전에 다른 작곡가가 비슷한 작품을 쓴 것이 존재한다. 이것은 내가 이전에 기억으로 생겨난 정보인데, 악보를 아직 찾지 못해서 다음에 악보를 찾으면 포스팅을 하겠다.)


↓존케이지 관련 서적↓

<사일런스 : 존 케이지의 강연과 글>

book.interpark.com/product/BookDisplay.do?_method=detail&sc.prdNo=219867161

 

싸니까 믿으니까 인터파크도서

[사일런스]는 출간 50주년을 기념해 국내에 소개하기 위해 판권을 계약했던 존 케이지의 [Silence- Lectures And Writing, 50th Anniversary Edition]의 완역본이다. [사일런스]는 존 케이지의 본격적인 첫 저작물

book.interpark.com

 

 

 


위의 책에서 나온 내용중에, 존 케이지의 말을 빌려 보자면,

그가 실험음악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 (p. 7)

" 예전에 나는 내 음악이 실험적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반박하곤 했다. 내 생각에 작곡가는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잘 아는 사람이었다. 이 말은 곧 채색을 하기전에 스케치를 하는 것 처럼, 연주를 하기 전에 리허설을 하는 것 처럼, 실험은 곡이 완성되기 전에 이미 일어났음을 뜻한다. 그러나 이 문제룰 더 깊이 생각해 본 나는 작곡가의 입장과 청자의 입장에 보통 본질적인 차이가 있음을 깨달았다. 작곡가는 자기가 나아간 길과 되짚어 온 길을 아는 숲속의 나무꾼처럼 자기 작품을 속속들이 알지만 똑같은 곡이 청자에게는 생전 처음 보는 나무들로 이루어진 숲과 같기 때문이다. "

 

계속해서 포스팅이 이어집니다.↓

patchpink0000.tistory.com/700

 

[현대음악 클래식] 존케이지의 <사일런스>로 보는 말말말(2)

▣21세기 문방구▣ 내 20대에 가장 좋아했던 작곡가였고, 지금도 여전히 그의 인자한 얼굴이 늘 머릿속에 박혀있다. 노숙자로 가난했던 삶을 보냈던 그는 아티스트로써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유

patchpink0000.tistory.com

 

 

 

오늘도 좋은 정보가 되셨기를 바랍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이 글은 모두 21세기 문방구의 전공자적 관점에서 서술한 전문글 입니다.

복사나, 재편집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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