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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독일 문방구/독일 유학생의 고뇌

한편의 책을 쓰고 싶어 생각한 주제

by 문방구PD 2020. 8.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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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21세기 문방구입니다.

※가끔은 일기 혹은 말하는 형식으로 얘기하고자 합니다.※

저는 글을 쓸 때 좀 시니컬하게 쓰는 걸 좋아합니다.  (재미를 위한 시니컬한 말투 입니다)


<한 편의 책을 쓰고 싶어 생각한 주제>

"행복하고 싶은 이유

그렇지만 또 그렇게 행복하고 싶지 않은 이유"

 


나는 좀 특별한 경험을 많이 했다. 음악 하는 사람으로써 모든 사람들이 다 꽃길을 걷고 있다 혹은 힘든일을 하지 않았을 거다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지만, 예술계 사람들은 정신적인 고통과 육체적인 고통을 어렸을 때 부터 겪는다. 내가 입시를 겪을 시절, 어떤 애는 재떨이가 날아왔다. 어떤애는 악보를 난도질 당했다. 등등의 괴팍한 선생님들의 행동을 일일히 나열하며 그 입시시간을 다양한 경험담과 스트레스로 보냈다. 그때는 그게 당연했다. 그 긴장감으로 인해 정신없는 입시생들이 정신을 차릴 수 있으니 말이다. 나는 음악하는 사람들을 체대생과 비교를 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항상 매일 연습을 하고 항상 전공을 위해 무언갈 해야 하니까. 기본적으로 취미로 운동하는 사람이 하루에 적어도 2,3시간 운동하는 것과 같은 논리이지만  우리는 전공이니, 그 스트레스가 얼마나 큰지 상상이나 할 수 있겠나

내가 7살 때부터 피아노를 시작했을 때 나는 그게 그냥 해야 하는 건 줄 알았다. 그리고 내가 뭘 좋아하는 건지 모를 때였다. 그냥 피아노 학원을 다니게 해 준 엄마에게 감사했다. 다만 그게 좋았던 건지 생각은 안 나지만, 극단적으로 혼난 기억이 생생하다. 6살 혹은 7살 때인지, 눈물과 콧물을 질질 싸는 그 광경이 내 머릿속에서 아직도 그려진다. 콧물을 어디로 흘려야 할지 옷에 닦아야 할지 울면서 고민을 했기 때문이다. 콧물이 너무 많이 나고 눈물도 많이 나는데, 선생님은 화를 내고 있었다. 휴지도 안 주고 말이다. 도대체 콧물을 어떻게 닦지 라는 그런 고민은 그 나이 때 엄청나게 힘든 경험이다. 거기에 신경이 쏠리니까 말이다. 그 피아노 학원 이름이 <샤론 피아노 학원>이었다. 그런데, 내가 샤론 피아노 학원 나왔다고 친구들에게 얘기하면, 너도나도 샤론 피아노 출신이었다.  난 너를 만난 적이 없는데 ? 체인점인가? 뭔가 샤론 피아노 학원은 굉장히 유명했다. 그러나, 내 기억엔 선생님이 내 손등을 때리며, 혼난 기억밖에 없다. 

엄마가 배우고 싶어 하셨던 피아노를 오빠와 함께 같이 시작하려고 피아노 학원을 수강한 단순한 이유에 나는 피아노를 시작하게 되었다. 나는 얌전히 피아노를 쳤다고 한다. 그게 지금의 나를 만든 첫 번째 이유다. 나는 왜 얌전히 하라는 데로 다 했을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참 말을 잘 들었던 것 같다. 좋아서 했던 걸까, 아니면 남들이 해서 했던 걸까 아직 잘 모르겠다. 왜냐면 난 초등학교 3학년 때 내가 피아노를 잘 치는 줄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급 임원이었기도 했고, 풍금 연주를 하긴 했다. 또 합창부에서 소프라노를 맡긴 했다. 당시엔 그냥 시키면 다 했다. 진짜 초등학교 때 안 해본 게 없는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중학생이 되자마자 다시 다른 도시로 전학을 가야했고, 피아노를 중단한 뒤 몇 년 뒤에 다시 피아노를 시작하게 될 줄 모른 채 계속 쳤던 피아노를 그리워만 했다.

새로운 도시에서 적응하려고 힘들게 지내던 중 몇 년 뒤 운 좋게도 엄마가 형편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다시 피아노 학원 등록을 시켜주셨다. 그리고 일반 피아노 학원에서 좋은 선생님을 만나 정말 과외처럼 레슨을 받았다. 그리고 놀라울 정도로 발전을 하고, 다른 입시 학원으로 바꾸면서 나는 예고를 진학했다. 그 당시에 나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를 굉장히 잘 쳤다. 예고 입시시험 당일날 내가 시험장에서 피아노를 치자마자 심사위원들이 고개를 동시에 들었다고, 가르쳐 준 선생님이 자랑스럽게 얘기 해주셨는데, 내가 생각해도 피아노를 잘 치긴 했다. 중학교 때 음악 선생님이 작곡과이셨는데, 내가 피아노과가 아닌 작곡과로 간다는 소식에 피아노과로 가라고 만류를 했지만,  난 작곡과로 전공을 돌렸다. 그때 그 입시 선생님이 얘기하셨지, <용의 꼬리가 되지 말고 뱀의 머리가 돼라!> 그렇게 상업적인 판단에 속았지만, 어쨌든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대학교 때 경영학과 학생들과 첫 미팅을 했을 때였다. 당시 나는 음대 1학년 갓 신입생이었다. 우리 과에 한명이 경영학과 학생들과의 미팅건을 잡아왔다. 우리과는 총 7명의 여학생이 있었고 1명의 남학생이 있었다. 나는 사실 미팅을 재미로 했다. 물론 판타지도 있었다. 그런데, 할 때마다 내가 첫 커플이 되는 거다. 그래서 너무 피곤했다. 자랑이 아니라 정말 피곤했다. 그냥 아무나 막 찍고 그랬던 게 커플이 되어서 우연이 인연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 첫 번째 했던 첫 미팅남과 짝을 이룬 후 다른 친구들의 미팅남들과 함께  단체로 학교 캠퍼스를 거닐었다. 그런 와중에, 테니스 장 근처를 거닐고 있을때 갑자기 내 미팅남이 눈을 손으로 움켜잡는 것이었다. 고개를 돌려 그의 눈을 봤더니 눈에 피가 흘렀다. 알고 보니, 테니스장에서 높은 담장을 넘어서 날아온 공에 그것도 내 미팅남이 맞은 거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을까, 아니 어떻게 이런 뭐 같은 우연이... 나는 그 사건 때문인지 너무 순수하게도 그 첫 미팅남에게 모성애가 생겨버렸다. 그리고 그 이후 연락을 하면서 커플이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쉽게 사귀었으니, 쉽게 헤어졌다. 50일 만에 말이다.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다. 첫 미팅 남의 눈이 테니스공으로 피 범벅이 된 첫 미팅과 내가 성인이 되고 난 이후 첫 연애. 참 희한하다.  

나는 당시 누군가와도 잘 어울리는 김 스치면 인연인 BTS 태형이 만큼 그냥 스쳐 지나가는 사람도 다 인맥을 만들었었다. 그 이후 4번째 미팅을 한 공대생 오빠들과 친하게 지냈다. 몇 년 동안 연락을 할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소원해져, 지금 생각해보니 언제부터 연락이 안 닿았는지 까먹었다. 인연이란 언젠가 닿으면 만나게 되겠지 라는 생각이 들면서, 가끔 그때 생각이 난다. 그리고 그때 가장 친했던 오빠가 나에게 했던 말이 내 스스로를 고정시킬 줄 몰랐다. 아니,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가끔 그 말을 인정하는 삶을 사는 것 같다. <너는 존재감이 있는데, 성격이 조용해>라고 말이다. 그것이 가끔 문제가 될 줄은 몰랐다. 아니, 내 인생을 통틀어 그 자체가 힘들줄 몰랐다. 웃긴 게, 내가 미팅을 자릿수 채우는 의미로 간 건데, 그럴 때마다 자꾸 커플이 되는 거다. 그래서 나는 5번 미팅을 채운 이후로 단체 미팅을 나가지 않았다. 난 피곤한 게 너무 싫었다. 내 친구들은 10번째 단체미팅을 한 이후 그만뒀다. 아, 그러고 보니 그 10번째 미팅에 마지막으로 자릿수를 채우러 갔었는데, 그때는 술집에서 시작을 했다. 분위기가 좀 이상했고, 이상한 게임을 해서 나는 기분이 불쾌한 나머지 술을 아예 못먹어서 일찍 나왔다. 그런데, 그때 내가 나가고 난 이후 일이 터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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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월, 금에 포스팅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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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한편의 책을 쓰고 싶어 생각한 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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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도 행복하게 지내봅시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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